원주 평장리 마애보살상에서 만난 바위 위 자비의 고요
늦가을의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던 오후, 원주 소초면 평장리의 마애공양보살상을 찾았습니다. 들판 끝자락에서 산자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오르니, 바위벽에 새겨진 보살상이 조용히 빛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바위 표면은 세월의 흔적이 남아 거칠었지만, 그 안에서 손을 모은 보살의 모습은 온화하고 단정했습니다. 주변은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바람이 불면 바위와 나무 사이에서 잔잔한 소리가 흘렀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된 바위에 새겨진 선의 표정 하나가 깊은 울림을 전했습니다. 사람의 손이 만든 것이지만, 자연과 완벽히 어우러진 아름다움이었습니다.
1. 평장리 들길에서 바위벽으로 이어지는 길
평장리마애공양보살상은 원주 시내에서 차량으로 약 25분 거리, 소초면 평장리의 낮은 구릉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면 ‘마애공양보살상’ 표지판이 도로 옆에 세워져 있고, 작은 시멘트길을 따라 들어가면 산기슭에 도착합니다. 주차 후 5분 남짓 걸으면 바위벽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위쪽 중앙에 보살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오르는 길은 완만하지만 낙엽이 많아 미끄러우니 주의가 필요했습니다. 길가에는 억새가 흔들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고요함을 더했습니다. 바위 앞에 서니 마치 그 자리가 오랜 기도의 자리처럼 느껴졌습니다. 접근이 쉽고, 주변 풍경이 한적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습니다.
2. 보살상의 형태와 조각 세부
바위에 새겨진 보살상은 높이 약 2.1미터로, 전체적으로 유려한 비례를 이루고 있습니다. 얼굴은 타원형으로 온화하며, 눈매는 길고 입가에는 미소가 살짝 번져 있습니다. 두 손은 가슴 앞에서 합장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법의 주름은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머리 위에는 둥근 광배가 새겨져 있는데, 안쪽에는 연꽃무늬가 얕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옷자락의 선이 바위결을 따라 이어지며, 섬세하면서도 단단한 조각 솜씨를 보여줍니다. 바위 표면은 풍화되어 거칠지만, 주요 윤곽은 뚜렷하게 남아 있어 조형미가 훼손되지 않았습니다. 빛이 닿을 때마다 윤곽선이 부드럽게 드러나며, 마치 살아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3. 역사적 배경과 예술적 가치
평장리마애공양보살상은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불교의 번성기였던 원주 일대에는 마애불과 마애보살상이 다수 조성되었는데, 이 작품은 그중에서도 공양의 자세가 가장 정제된 형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안내문에는 “보살이 합장한 모습은 자비와 공경을 상징하며, 당시 불교 신앙의 중심이었던 공양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지역의 마애불과 비교해도 얼굴의 표현이 부드럽고, 법의 선이 유려하여 예술적 완성도가 높습니다. 화려한 장식 없이도 마음을 안정시키는 기운이 전해졌습니다. 신앙의 대상이자 예술작품으로서, 이곳의 보살은 오랜 세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었습니다.
4. 바위와 숲이 어우러진 풍경
보살상이 새겨진 바위는 남서향으로, 오후 햇살이 정면으로 닿아 따뜻한 빛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바위 주변에는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어우러져 있으며, 계절마다 색이 달라집니다. 바위 앞에는 제향용 돌상이 놓여 있고, 작은 향로와 돌로 만든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관리가 잘 되어 있어 주변이 정갈했고, 잡초가 거의 없었습니다. 특히 바위 위를 덮은 이끼가 빛을 받아 녹색빛으로 반사될 때, 보살상의 윤곽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조용한 공간에 앉아 있으면 새소리와 바람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돌과 빛, 그리고 바람이 함께 만든 하나의 완벽한 풍경이었습니다.
5. 함께 둘러볼 인근 문화유산
평장리마애공양보살상을 관람한 뒤에는 차량으로 10분 거리의 ‘흥법사지 삼층석탑’을 방문했습니다. 두 유적 모두 통일신라 불교미술의 흐름을 잘 보여주며, 한 시대의 예술적 감각을 비교하기에 좋습니다. 이어서 ‘황장금표’로 이동해 조선시대 산림 보호 제도의 흔적을 살펴봤습니다. 두 곳 모두 자연 속에 자리한 유산이라 조용히 걷기에 적합했습니다. 점심에는 소초면 중심의 ‘한우국밥집’에서 따뜻한 식사를 하며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평장리에서 시작해 탑과 금표로 이어지는 코스는 원주의 역사와 자연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여유로운 탐방이었습니다.
6. 방문 시 참고할 점
평장리마애공양보살상은 상시 개방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없습니다. 비가 온 뒤에는 바위길이 젖어 미끄러우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여름철에는 모기가 많고, 겨울에는 바위 표면이 얼어 접근이 어렵습니다. 햇살이 정면으로 드는 오후 2시 전후가 관람에 가장 좋은 시간대입니다. 플래시 촬영은 금지되어 있으며, 돌에 직접 손을 대지 않아야 합니다. 주변에는 화장실이나 매점이 없으므로 물과 간식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봄에는 산벚꽃, 가을에는 단풍이 바위 주변을 감싸며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조용히 앉아 보살상의 표정을 바라보면, 묵묵한 평온함이 마음속에 스며듭니다.
마무리
평장리마애공양보살상은 크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세월과 마음의 깊이는 무한했습니다. 거칠게 풍화된 바위 속에서도 자비와 공경의 표정이 그대로 살아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옷자락의 선이 움직이는 듯 느껴졌습니다. 화려한 사찰의 불상과는 달리, 이곳의 보살은 자연 속에서 스스로 빛을 냈습니다. 바위에 새긴 손끝의 온기가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습니다. 다음에는 눈이 내린 겨울날 다시 찾아, 흰 눈 사이로 드러난 보살상의 고요한 미소를 보고 싶습니다. 평장리의 마애공양보살상은 인간의 신앙과 자연이 하나로 이어진, 원주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의 조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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